묘자리

헌인릉 풍수, 풍수지도가 A로 읽은 헌릉과 인릉

맑은 하늘 아래 풀 언덕 비탈에 선 소나무 세 그루
사진: Cz Jen / Pexels

헌인릉에 가면 한 울타리 안에 왕릉이 둘 있어요. 조선 초의 태종과 조선 후기의 순조가 400년이 넘는 시차를 두고 같은 산자락에 묻힌 곳이에요. 두 능이 이 자리에 온 내력을 기록으로 따라가고, 풍수지도가 이 터를 읽은 점수를 그 옆에 펼쳐 놓았어요.

헌인릉은 헌릉과 인릉을 합친 이름이에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 헌릉과 인릉」은 헌인릉을 두 능을 합쳐 부르는 이름으로 풀어요. 헌릉은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고, 인릉은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이에요.

두 능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고, 1970년에 이 일대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조선왕릉 누리집은 헌인릉이 대모산의 남쪽 기슭에 있다고 적어요.

조선왕릉이 대체로 어떤 땅을 골랐는지는 조선왕릉 풍수 글에 먼저 써 두었어요. 이 글은 헌인릉 한 곳만 들여다봐요.

헌릉은 왕비의 능을 쓰면서 왕의 자리까지 잡았어요

조선왕릉 누리집의 헌릉 설명을 보면 1420년에 원경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능은 그때 광주 땅이던 대모산에 만들었고, 태종은 이때 자신이 묻힐 자리도 미리 마련했어요.

2년 뒤인 1422년에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원경왕후 능의 서쪽에 능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헌릉은 한 언덕에 봉분 둘이 나란히 놓인 쌍릉이에요.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면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예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헌릉의 방향을 건좌손향이라고 적어요. 북서쪽을 등지고 남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이에요.

누리집은 헌릉의 석물이 다른 조선왕릉의 두 배라고 소개해요. 석물은 능 둘레에 세우는 돌 조각이에요. 문석인과 무석인을 두 쌍씩, 돌로 깎은 말과 양과 호랑이를 네 쌍씩 세웠고, 고려 공민왕 능의 제도를 이어받았다고 해요.

인릉은 풍수를 이유로 파주에서 옮겨 왔어요

순조는 1834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파주 교하의 인조 장릉 가까이에 능을 썼어요. 조선왕릉 누리집은 그 뒤 이 자리가 풍수로 보아 좋지 않다는 논의가 일었다고 적어요.

1855년부터 능을 옮기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졌고, 1856년에 헌릉 서쪽 언덕인 지금 자리로 옮겼어요. 1857년에 순원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같은 봉분에 함께 모셨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인릉의 방향을 자좌오향으로 적어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능이에요. 옛사람이 무엇 때문에 묘를 옮겼는지는 묘 이장 시기 글에 따로 있어요.

세종의 능도 처음에는 헌릉 서쪽에 있었어요

헌릉 곁에는 왔다가 떠난 능이 하나 있어요. 세종과 소헌왕후의 영릉이에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주 영릉」은 이 능이 1446년에 헌릉의 서쪽 언덕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적어요.

같은 항목은 1467년에 영릉의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고, 1469년에 지금의 여주로 옮겼다고 적어요. 옮기기 어려운 석물은 처음 자리의 땅에 묻었어요.

그 석물이 인릉에서 다시 쓰여요. 조선왕릉 누리집은 인릉을 옮길 때 땅에 묻혀 있던 옛 영릉과 옛 희릉의 석물을 다시 썼다고 소개해요. 능을 옮기는 데 드는 나랏돈을 줄이려는 조치였다고 해요.

두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헌릉 서쪽 언덕은 한 번은 능이 떠난 자리이고 한 번은 능이 옮겨 온 자리예요. 다만 두 능의 자리가 정확히 같은 곳인지는 이 글이 읽은 자료에 나오지 않아요.

능 앞 낮은 땅에는 오리나무 숲이 있어요

조선왕릉 누리집의 「헌릉 오리나무숲 이야기」는 능 아래쪽에 오리나무가 무리 지어 자란다고 적어요. 서울시는 2005년에 이 숲을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했어요.

같은 글은 능의 좌우와 뒤에는 소나무를, 앞쪽인 남쪽의 낮은 땅에는 오리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인다고 써요. 숲 둘레는 지하수가 넉넉하고 곳곳에 물웅덩이와 작은 물길이 있다고 해요.

뒤에 산이 있고 앞이 낮으며 물이 가까운 땅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면 아래의 점수가 쉽게 읽혀요.

풍수지도 세 기준에서 모두 A예요

풍수지도는 헌릉과 인릉을 지도에 명소로 올려 두었어요. 명소 등급은 집터, 묘자리, 사업터 세 기준에서 모두 A예요. 지도에 능역 경계가 그려져 있고, 그 경계 안에서 점수가 제일 높은 칸이 등급을 정해요.

점수까지 보려면 주소를 검색할 때처럼 한 지점을 재야 해요. 풍수지도가 엔진 점검에 쓰는 헌릉 봉분 좌표(북위 37.4661도, 동경 127.0829도)를 2026년 10월 10일에 재 봤어요.

검색 결과는 그 좌표 둘레 150m 안에 든 칸 28개를 읽어요. 능역 경계 안의 칸 29개를 읽은 값도 옆에 적었어요. 명소 화면에는 등급 글자와 다섯 기준의 점 표시만 나오고, 경계 안 점수 숫자는 이 글이 같은 계산으로 따로 낸 값이에요.

기준봉분 좌표 둘레 150m능역 경계 안
집터93점, A93점, A
묘자리90점, A89점, A
사업터95점, A95점, A

두 값의 차이는 묘자리 1점뿐이에요. 둘레 150m 안의 28칸 가운데 12칸은 능역 경계 밖에 있어요. 묘자리 기준으로는 그 경계 밖의 한 칸이 90점으로 제일 높아요.

A는 서울 안에서 매긴 순위예요

등급은 전국 공통 점수로 정하지 않아요. 서울의 모든 칸을 기준마다 따로 줄 세우고, 위에서 4% 안에 드는 칸에 S와 A를 줘요.

2026년 10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A가 시작되는 점수는 집터 90점, 묘자리 89점, 사업터 91점이에요. 집터 93점은 3점, 사업터 95점은 4점의 여유가 있어요.

묘자리 기준에서 능역 안 점수인 89점은 A가 시작되는 점수와 같아요. 풍수지도가 등급 기준을 다시 계산하면 B로 내려갈 수도 있는 자리예요. B는 무난한 터라는 뜻이에요.

다섯 기준 가운데 사방의 산만 낮아요

집터 결과를 낸 칸은 풍수지도가 헌릉 능침으로 적어 둔 지점에서 약 25m 떨어져 있어요. 그 칸의 다섯 기준 점수는 이래요.

기준점수
뒤의 산 (배산)100
물 (임수)100
앞뒤 높낮이 (전저후고)100
바람 (장풍)94
사방의 산 (사신사)69

뒤의 산, 물, 앞뒤 높낮이가 모두 100점이에요. 제일 가까운 물길은 약 290m 거리에 있어요. 대모산 남쪽 기슭이고 능 앞이 낮고 물이 많다는 기록과 같은 쪽을 가리키는 결과라고 이 글은 읽어요.

사방의 산만 69점이에요. 결과 화면의 근거 표시를 보면 서쪽 봉우리는 이 칸보다 약 240m 높은데 동쪽 봉우리는 약 40m 높아요.

좌우 산의 높이가 크게 달라서 점수가 깎인 것으로 보여요. 이 풀이는 근거 값을 보고 이 글이 짐작한 것이에요. 사방의 산 이름과 뜻은 좌청룡 우백호 글에 풀어 두었어요.

묘자리 점수가 집터보다 낮은 까닭도 여기에 있어요. 묘자리 기준에서는 사방의 산이 총점의 30%를 차지해요. 집터 기준의 20%보다 커서 69점이 총점을 더 많이 끌어내려요.

사업터 점수가 셋 가운데 높은 것은 물에 35%, 앞뒤 높낮이에 25%를 두는 기준이기 때문이에요. 두 점수가 모두 100점으로 나왔어요. 기준마다 다른 이 무게는 옛 책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풍수지도가 정한 값이에요.

풍수지도가 재지 않는 것도 있어요

풍수지도는 땅의 높낮이와 지금 흐르는 물길을 읽어요. 헌릉의 건좌손향이나 인릉의 자좌오향 같은 능의 방향은 점수에 들어가지 않아요.

A라는 글자는 옛사람의 판단을 채점한 결과가 아니에요. 전통 이론의 다섯 기준을 지금의 지형 데이터에 옮겨 쟀더니 이 터가 서울 칸들 가운데 위쪽에 놓였다는 뜻이에요.

헌인릉은 풍수지도가 엔진을 다시 돌릴 때마다 집터 등급이 A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지 살펴보는 점검 자리이기도 해요. 점검에 맞추려고 기준을 고치지는 않아요.

헌인릉 풍수, 기록과 점수를 겹쳐 보면

헌릉은 1420년대에 대모산 남쪽 기슭에 자리를 잡았고, 인릉은 1856년에 풍수를 이유로 그 서쪽 언덕에 옮겨 왔어요. 풍수지도로 재면 뒤의 산과 물과 앞뒤 높낮이가 100점이고 사방의 산이 69점이에요.

세 기준 모두 서울 안에서 A예요. 지도에서 묘자리 기준을 고르고 헌릉과 인릉을 누르면 능역 경계와 다섯 기준을 직접 볼 수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헌릉과 인릉에는 누가 묻혀 있어요?
헌릉은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고, 인릉은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이에요. 두 능을 합쳐 헌인릉이라고 불러요.
인릉은 왜 옮겼어요?
조선왕릉 누리집은 처음 능을 쓴 파주 교하 자리를 두고 풍수로 보아 좋지 않다는 논의가 일어서 1856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적어요.
풍수지도에서 헌인릉은 몇 등급이에요?
명소 등급은 집터, 묘자리, 사업터 모두 A예요. 헌릉 봉분 좌표를 2026년 10월 10일에 재면 집터 93점, 묘자리 90점, 사업터 95점이에요. 서울 안에서 매긴 순위예요.
헌인릉 관람 시간과 요금은 어디서 봐요?
바뀔 수 있는 정보라서 이 글에는 옮기지 않았어요. 조선왕릉 누리집의 헌릉·인릉 관람정보에서 확인해 주세요.

묘자리 기준으로도 볼 수 있어요

지도를 묘자리 기준으로 바꿔 사방을 산이 감싸고 바람이 머무는 자리를 먼저 보여 드려요.

묘자리 기준 지도 열기

참고한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 헌릉과 인릉」 (나각순), 2026-10-10 확인. 두 능을 합쳐 부르는 이름, 서초구 내곡동, 1970년 사적 지정, 헌릉은 건좌손향의 쌍분, 대모산을 능지로 선정, 인릉은 자좌오향의 합장, 파주 교하에서 1856년에 옮기고 다음 해 합장
  • 조선왕릉 누리집 「헌릉·인릉 이야기」 헌릉 (국가유산청), 2026-10-10 확인. 1420년 원경왕후 능을 먼저 조성하며 태종의 능자리를 미리 마련, 1422년 서쪽에 태종 능 조성, 쌍릉의 좌우, 석물이 다른 왕릉의 두 배이고 고려 현·정릉 제도를 계승
  • 조선왕릉 누리집 「헌릉·인릉 이야기」 인릉 (국가유산청), 2026-10-10 확인. 1835년 파주 교하 인조 장릉 근처에 조성, 풍수 논의로 1855년부터 옮길 것을 논의해 1856년 헌릉 서쪽 언덕으로 옮김, 1857년 합장, 옛 영릉과 옛 희릉의 석물을 다시 씀
  • 조선왕릉 누리집 「헌릉 오리나무숲 이야기」 (국가유산청), 2026-10-10 확인. 대모산의 남쪽 기슭, 능 아래 오리나무 군락, 2005년 서울시 생태경관 보전지역, 능 좌우와 뒤는 소나무·앞 남쪽 낮은 땅은 오리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임, 지하수가 풍부하고 물웅덩이와 작은 수로가 있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주 영릉」 (신지혜), 2026-10-10 확인. 1446년 헌릉의 서쪽 언덕에 조성, 1467년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옮길 것을 논의, 1469년 여주로 옮김, 처음 자리의 석물은 땅에 묻음
  • 조선왕릉 누리집 「헌릉·인릉 관람정보」 (국가유산청), 2026-10-10 확인. 관람 시간과 요금을 안내하는 쪽이고, 값은 이 글에 옮기지 않음
  • 풍수 통설: 스물네 방위, 건은 북서, 손은 남동, 자는 북, 오는 남. 건좌손향은 북서를 등지고 남동을 바라보는 방향, 자좌오향은 북을 등지고 남을 바라보는 방향
  • 풍수지도 명소 등급과 자리 판정, 헌릉 봉분 좌표(북위 37.4661, 동경 127.0829) 둘레 150m 안 최고 칸과 능역 경계 안 최고 칸, 서울 칸 분포의 백분위 등급, 기준별 무게는 풍수지도가 정한 값 (2026년 10월 10일 측정)